갤러리로터스 | 서대문 형무소 백 주년 기념 출판 및 이미지展 | 2008.1.1-2.29.

책과 전시로 되새기는 근현대사의 그늘진 기억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치하에서의 독립운동과 군부독재시절의 민주화운동 등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소다. 근대적 시설을 갖춘 한국 최초의 감옥으로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가두기 위한 감옥의 부족을 느껴 지은 이래,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며, 사일구와 오일륙 등의 격동기에는 부패 권력자들이 드나들었고, 군부독재정권 아래서는 민주화를 열망하던 이들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던, 파란만장했던 우리 근현대사를 그대로 증언하고 있는 곳이다.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에 자리하던 마지막 모습 그리고 역사, 증언, 기록 등을 통해, 올해로 개소(開所) 백 주년을 맞은 서대문형무소를 다각적으로 조명한 책을 발간하고, 이를 기념하여 서대문형무소의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작은 전시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수감자들의 체취와 흔적이 묻어나는 이미지들을 커다란 천에 인쇄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이미지들로 인해 잠깐 동안 감옥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자료사진, 도면 그리고 여러 기록에 의해 새롭게 정리한 내용으로 꾸민 ‘서대문형무소 소사(小史)’를 통해, 우리 감옥사(監獄史)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이 자그마한 책과 전시로, 우리 민족사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던 모순과 역설의 현장을 다시금 기억해 보고자 한다.

서대문형무소 약사(略史)

1907 일본인 시텐노 가즈마 설계, 대한제국 탁지부 건축소 시공으로 착공.
1908 ‘경성감옥’으로 개소. 1909 스무 명의 항일의병 지도자들이 사형당함.
1911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안악사건’으로 안명근, 김구 등 십여 명 투옥.
1912 ‘서대문감옥’으로 개칭. ‘백오인사건’으로 백스물한 명의 애국지사 검거 투옥.
1919 삼일운동으로 천육백아흔두 명 입감.
1920 유관순 열사, 강우규 의사 순국.
1923 ‘서대문형무소’로 개칭.
1932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폭탄 투척 사건의 여파로 안창호 지사 등 애국지사 대거 투옥.
1943 ‘경성방송국 단파방송 사건’으로 지식인 백오십여 명 투옥.
1950 ‘서울형무소’로 개칭.
1960 사일구 의거 직후 정치인, 군장성, 정치깡패 등 대거 입감.
1961 오일륙 직후 반혁명사건 연루자들 대거 투옥. ‘서울교도소’로 개칭.
1967 ‘서울구치소’로 개칭. 1979 십이륙의 주역 김재규 투옥.
1987 경기도 의왕 신축 건물로 이전.
1988 제10-12옥사와 사형장이 사적 제324호로 지정.
1998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개관. 중앙사와 제9-13사, 한센병사 등 일곱 개의 건물과 사형장 보존.

서대문 형무소
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그 역사
사진 김동현·민경원 글 리영희·나명순
1908년 문을 열어 올해로 개소 백 주년을 맞는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보기드문 기록적 가치를 지닌 책. 서대문형무소가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 간 직후인 1988년 1월의 모습을 담은 포토저널리스트 김동현·민경원의 사진과 함께, 군부독재정권 아래서 세 차례나 서대문형무소에 복역했던 리영희의 「서대문형무소의 기억」, 자료사진·도면과 함께 읽는 작가 나명순의 「서대문형무소 소사(小史)」, 그리고 부록으로 김구(金九), 심훈(沈熏), 김정련(金正連) 등 독립지사 세 분의 글을 덧붙여, 서대문형무소에 관해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A5 변형 / 양장 / 168면 / 16,000원 / 도판 123컷 / 책 보기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