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로터스 | 사진의 목소리: 고현주의 重山艮과 열화당의 사진책들 2015.1.8 – 3.20. 연장전

대부분 사진전은 주로 사진작품만 전시된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는 사진가 고현주(高賢州)의 ‘중산간(重山艮)’ 시리즈 9점과 열화당에서 출간한 사진집 70여 권을 함께 전시한다. 이 책들은 베르너 비숍,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워커 에번스, 외젠 앗제, 강운구, 구본창, 배병우, 육명심, 주명덕, 최민식 등 50여 명의 국내외 대표적 사진가들의 사진집이다. 왜 전시장에 사진작품과 함께 사진책이 전시되는가. 우리는 그동안 사진의 형식과 내용에 비해,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접근은 소홀했다. 이번 전시 「사진의 목소리」는 매체로서의 사진, 즉 디지털 기술복제시대의 사진작품과 사진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상상의 박물관’

특정 장소를 위해 제작된 조형물이나 회화들은 박물관의 문턱을 넘으면서 예술작품이 된다. 이를테면 비너스상이 신전에 놓여 있을 때는 숭배의 대상이 되지만, 박물관에서는 미적 감상의 대상이 된다.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1936)에서, 예술작품은 박물관에 예술작품이 소장됨으로써 기존의 ‘예배가치(Kultwert)’에서 해방되어 ‘전시가치(Ausstellungswert)’를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술품을 복제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시가치는 더욱 증가하게 되었고, 급기야 사진 자체로 와서는 전시가치가 제의가치를 역전한다고 한다.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는 「상상의 박물관(Le Musee imaginaire)」(1947)[이 글은 1951년 출간된 『침묵의 목소리(Les Voix du silence)』의 제1부로 구성된다]에서, 건축물과 한몸인 탓에 박물관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벽화,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등도, 사진복제를 통해 전시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예술작품을 사진으로 복제한 도록, 즉 ‘미술책’이 바로 그것으로, 그는 이를 ‘상상의 박물관’이라 칭한다. 책 속에서 예술품들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다양하게 비교, 열거되면서 또 다른 의미를 생산해낸다. 기존 미술의 중심성과 위계는 해체되고, 침묵에 잠겨 있던 예술작품은 새로운 목소리를 낸다. 미술책은 일종의 ‘벽 없는 박물관(museum without walls)’인 것이다.

전시장 모습.

디지털 기술복제시대의 사진작품과 사진책

물론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은 회화나 조각의 원본을 사진으로 복제한 미술책을 뜻하기 때문에 ‘원본/복제’라는 개념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회화나 조각이 아닌 사진일 경우는 어떻게 될까. 둘 다 복제기술로 ‘인화/인쇄’된 ‘사진작품/사진책’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더구나 지금은 베냐민과 말로가 살았던 아날로그 기술복제시대가 아닌 디지털 기술복제시대로, 사진작품과 사진책은 모두 디지털 방식으로 찍고 편집하고 프린트한다. (물론 아직 아날로그 오프셋 인쇄 방식으로 대부분 제작되고 있지만, 디지털 인쇄기술의 보급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원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재(무의미)하기 때문에 ‘복제품’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개념적으로는 차이가 없는 오늘날의 사진작품과 사진책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가치평가의 간극이 크다.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은 대부분 10점 미만의 제한된 에디션(edition)으로 희소성을 확보하고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반면 사진책은 작가와 출판사 사이에 약속만 유지되면, 쇄(刷)와 판(版)을 거듭해 수백 권에서 수백만 권까지 보급이 가능하고, 합리적인 시장가격을 지닌다. 기득권층이 독점했던 지식을 인쇄술의 발명을 통해 민중들에게 평등하게 전파할 수 있었던 것처럼, 책은 예술의 민주적인 매체다. 특히 사진,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 사진은 전시장이 아닌 책의 형태로 기록되었을 때 본연의 가치를 지니며, 비로소 완성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고현주, 중산간 5-4, 2014.

사진작가 고현주와 ‘중산간’

고현주는 6년간 재직했던 음악교사직을 버리고 어린시절 꿈꾸던 사진가가 되기 위해 고향 제주도에서 상경해 사진을 전공했다. 그녀는 2002년 ‘재건축아파트’ 시리즈로 제5회 사진비평상을 수상하여 대림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미술계에 입문한다. 2006년에는 당시 섭외하기 힘든 정부공공기관을 ‘권력의 공간’으로 촬영한 ‘기관의 경관’ 시리즈로 다시 미술계에 주목을 받는다. 2007년 ‘권력’에서 ‘감옥’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우연히 안양소년원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2008년부터 오늘까지 사진을 통해 불행한 소년원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꿈꾸는 카메라’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에는, 7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중산간(重山艮)’이란 타이틀로 3번째 개인전을 갤러리 이마주에서 개최하여 많은 주목받았다. ‘중산간’은 『주역(周易)』의 52번째 괘(卦)로, 산들이 첩첩히 쌓여 있는 형국이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 멈추고 숨을 고르라는 뜻이다. 고향 제주의 대자연 앞에서 잠시 쉬어 가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이 시리즈 중 엄선된 9점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전시기간 : 2015년 1월 8일 – 2015년 3월 20일 (2월 6일까지였으나 다음 전시가 연기되어 약 한 달간 연장전시됩니다)
전시오픈 : 2015년 1월 8일(목) 오후5시
관람시간: 월-금 10:00-18:00  주말(토.일) 및 공휴일 휴관. 일반 사무공간 안에 갤러리가 있어 가급적 점심시간(12:00-13:00)을 피해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시작품 : 고현주의 ‘중산간(重山艮)’ 시리즈 대형사진 9점 + 열화당의 사진책 70여 권

기획 및 연출 : 독립큐레이터 류병학
코디네이터 : 독립큐레이터 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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