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 책의 학교’ 2015년 두번째 특강 | 「백범일지의 역사적 의미」 : 박원순 서울시장

白凡을 伏慕하며 白凡逸志를 염하다 

光復 칠십 년, 悅話堂 이백 년 기념 ― ‘열화당 책의 학교’ 2015년 두번째 특강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오후 2시 / 파주출판도시 열화당책박물관

출판사 열화당은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白凡逸志)』의 정본(正本)을 향한 삼 년 동안의 책만들기 염(殮) 작업을 끝내고, 『정본 백범일지』 두 권을 백범 선생의 영전(靈前)에 올리는 출판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백범 선생 관계자를 비롯하여 출판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 백오십여 명의 인사가 함께해 주었으며, ‘열화당 책의 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의 특강이 진행되었습니다. 


 

 

백범일지의 역사적 의미: 우리의 미래는 과거에 있습니다

박원순(서울시장)

 『정본 백범일지』 출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드립니다. 열화당 이기웅 대표님, 그리고 삼 년 동안 힘을 모아 주신 열화당 편집실 직원 한 분 한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열화당의 의지가 『정본 백범일지』를 정성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들과 감동을 나누고 싶어 왔습니다. 수많은 책을 보았지만, 이토록 정성이 담긴 책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영남대 교수이셨고, 제가 운영했던 역사문제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을 지내신 정석종 교수가 하버드 법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시대에 간행된 왕과 관련한 여러 서적들을 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런 책은 세상에서 다시 낼 수 없을 것이다. 한지(韓紙)가 우수한 것은 다 잘 알 텐데, 한지 한 장 한 장마다 봉황이 새겨져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종이에 인쇄된 것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런 감동을, 저는 『정본 백범일지』를 보면서 실감합니다.

저는 주변에서 이런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서울시장이 이왕이면 큰 것을 하나 터뜨려서 정치적으로 큰 성과를 내어 인기를 얻으라.” 그런데 저는 작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은 것에 정성을 기울여야 큰 것도 정성스럽게 됩니다. 그래서 서울시 공무원들이 참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정본 백범일지』를 출간한 열화당 이기웅 대표님도 저랑 같은 종(種), 같은 과(科)이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출판인이라는 자신의 평생 소임을 한치도 어김없이, 그 귀한 사명을 다해 주셨습니다. 누가 하라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오직 사명감으로, 오직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완성해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날림’이 익숙한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족한 게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출판계만은 좀 다릅니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그동안 기울인 공로가 참으로 빛납니다. 저는 이것이 다른 영역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습니다.

 백범일지를 염(殮)하다

『백범일지』 정본 출간은 그야말로 삼 년 동안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기에 감히 ‘염(殮)했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범 선생은 일생을 민족의 독립과 흥복(興復)의 길에 바치셨습니다. 『백범일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우리 역사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열화당의『정본 백범일지』가 바로 그 기록을 온전히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백범이라는 호(號)를 책 외면으로도 그대로 불러내어 주셨습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소박하고 단정한 책표지가 백범의 호처럼 고결하고, 평범한 듯한 흰색은 그러나 위대함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백범께서 그토록 사랑하던 이 땅을 떠나신 지 반세기가 훌쩍 넘어서야 우리는 백범의 기록을 제대로 염할 수 있었습니다. 구천을 떠돌던 백범 김구 선생이 오늘 이 자리에 계셨다면 잠깐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분은 안식(安息)에 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분을 진정으로 염해 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백범일지』의 그 내면, 그 정신, 그 영혼, 그 가르침을 염해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국이, 우리의 현실이, 『백범일지』에 담긴 김구 선생의 정신을, 유훈을, 소망을, 꿈을 제대로 염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염’은 이 책의 출판을 시작으로, 『백범일지』에 담겨 있는 애국애족의 사상과 정신을 우리가 진실되게 실천함으로써 완성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 우리는 백범 선생께 진정한 안식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의 땅, 민주주의의 후퇴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백범께서 당시 삼천만 동포 앞에서 이렇게 읍고(泣告)하셨습니다. 그런 백범께서 지금 이 땅을 보신다면 어떠실까요. 광복 칠십 주년을 맞고도 아직까지 하나 되지 못한 조국을 보신다면, 쓰러지기를 수차례 하셨을 겁니다. 아직도 남북이 총과 칼을 겨누고 갈등과 반목을 반복하는 현실을 보신다면 몹시 슬퍼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남북 분단만이 아닙니다. 우리 내부에도 분단이 있습니다. 좌와 우의 이념 갈등, 지역의 대결, 빈부의 격차, 그리고 세대간 갈등으로 우리 민족은 갈갈이 조각나 있습니다. 우리는 늘 반목하고 갈등하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조정할 어떤 지도자도 없습니다. 모두가 대결의 한 당사자일 뿐입니다. 백범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민족의 단합, 나라의 융성, 조국의 통일은 묘연합니다. 우리에게는 ‘논의력(論議力)’, 즉 ‘사회적 논의력’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그럼으로써 어떤 논의를 진전시켜 마침내 합의와 약속에 이르는 힘이 절실합니다.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가장 보수적인 기독교민주연합(CDU) 출신이신데, 재선될 때 오히려 사회민주당(SPD)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분입니다. 독일의 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빌리 브란트 총리 이후 정당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늘 동독에 대해 화해와 포용의 정책을 폄으로써 마침내 통일을 이루어냈습니다. 백범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당신께서 『백범일지』를 통해 구상했던 정책을 정부의 수반이 돼서 실천하셨다면, 아마도 우리의 현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가야 하는데 안개 때문에 비행기가 뜨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네 시간이 걸려 갔습니다. 지도를 보니 오히려 서울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것이 훨씬 짧은 거리였습니다. 만약 고속철로가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놓이게 된다면, 아마 세 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는 그런 거리일 겁니다.

중국은 지금 시진핑 주석 이래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저는 일대일로가 베이징에서 서양으로 가는 길일 뿐만 아니라, 또한 동방으로, 평양을 거쳐서 서울까지 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반도 안에 갇혀서 늘 싸우고 대립하는 우리의 좁은 마음도 넓어져서 대륙으로 연결되고, 지금 우리에게 닥친 정치적 갈등, 경제적 지체, 문화적 침체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백범일지』를 보면 민주주의에 관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백정과 범부라도 애국심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백범이라는 호를 지으셨다고 했는데, 지금 그러한 애국심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많은 청년들은 ‘헬조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 대한민국을 탈출하려는, 이민을 가고자 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고, 실제로 이민을 했다거나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계모임까지 조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화강국(文化强國)

백범 선생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죠.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문화적 힘이 많이 커졌습니다.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창의력과 상상력은 큰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케이-팝, 케이-드라마, 케이-필름 등이 굉장히 큰 한류(韓流)의 바람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인문적 수준, 학문적 업적, 문화예술적 품격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수준, 업적, 품격은 민주주의에서 비롯됩니다. 이미 백범 선생은 그런 것을 강조하셨고, 『백범일지』는 그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려 성취한 민주주의의 많은 기초들, 특히 ‘표현의 자유’가 옥죄이며 다시 억압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라고 하는 이 보편적 가치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끊임없이 혼미(昏迷)를 거듭하는 정치가, 재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제가, 문화적 퇴행의 시대가, 결국은 이런 민주주의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결코 백범께서 꿈꾸던 세상은 아닙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저도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말 부끄럽습니다.

백범 정신의 염을 향하여

“처음 길을 걸어갈 때 온전하게 잘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열화당이 그 길을 힘차게 열어 주었습니다. 백범의 기록을 염한 우리의 첫걸음이 백범의 정신과 영혼을 염하는 시대로 향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같이 염꾼이 되어 그런 시대를 열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미래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백범이 말씀하신 그 시대, 그 과거, 그 정신으로 우리가 되돌아감으로써 참다운 희망의 미래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마음으로 비로소 백범께서 주창하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함께 가면 길이 되고,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우리의 미래는 『백범일지』에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과거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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