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옛집, 지혜로운 삶의 공간_한옥문헌전 | 전시연구1

조선시대 건축 관련 문헌의 역사
발견의 기쁨과 계승의 자취
정혜경(鄭惠卿)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사
한국의 전통가옥 문헌전을 준비하며 조선의 백과사전류인 ‘유서(類書)’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서는 여러 문헌에서 발췌한 지식을 유사한 내용끼리 분류해서 묶은 책, 즉 당대의 백과사전이어서, 학술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전통가옥 문헌전과 관련하여 유서를 언급하는 이유는, 조선시대에 백과사전류 유서 외에는 개인이 건축에 관하여 낸 저작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조선 지식인의 최대 관심 학문은 성리학(性理學)이었으니, 지식 탐구의 범주가 그리 넓지 않았다. 성리학의 경서(經書)들은 그 내용의 난해함 등으로 접근이 쉽지 않은 데 비해, 유서는 그와 달리 구체적이라 옛 선비들의 생활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는 경전, 문학과 함께 정치, 외교, 의복, 주거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회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이운지(怡雲志)」편에서는 19세기 선비의 운치 있는 주거공간을 생생하게 그려 볼 수 있다. 이 유서들은 백과사전적 저작이므로 농업관련 정보와 생활의 지혜, 주택에 관한 지식을 두루 아우르고 있다. 
이런 유서가 저작으로 존중을 받는 이유는 전거(典據)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지식인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중국 서적의 인용을 많이 담았지만 출처를 명백히 밝혔다. 후대의 유서는 전대 유서의 정보를 바탕으로 필요한 부분을 보충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혀 나가는 과정을 거쳐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 준다. 유서와 같은 백과사전은 그 시대 지식인이 섭렵한 지식 정보와 편찬 능력을 보여 주며 또한 당대 학술정보가 발전해가는 양상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런 백과사전의 계보를 그려 보니 조선시대 건축관련 문헌에서 계승의 자취가 보였다. 『임원경제지』는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산림경제』는 『한정록(閑情錄)』에서, 『성호사설』은 『반계수록(磻溪隨錄)』에서 각각 자극받아 저술되었고, 『고사촬요(攷事撮要)』는 『고사신서(攷事新書)』로, 『산림경제』는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로 발전했다. 이렇게 계승하며 조선 후기 각 시대의 유서는 조선 건축 관련 문헌사의 계보를 이루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서 중 『산림경제』와 『증보산림경제』,『성호사설』 필사본을 볼 수 있다. 조선은 국가에서 출판을 주도하며 통제하였고 농서(農書) 이외에 실용지식 저서를 주요하게 다루지 않았다.『산림경제』와『임원경제지』같은 중요한 유서들도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성호사설』은 열화당책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산림경제』는 화봉책박물관에서 『증보산림경제』와 함께 대여해 주셨다.
화봉책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사촬요』를 직접 볼 수 있던 기회는 유서에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고사촬요』의 초판은 1554년에 나왔다. 열화당책박물관에는 비슷한 시기인 1551년에서 1559년 동안 출간된 『마르틴 루터 전집』이 있어서 같은 시기에 나온 우리 고서를 연구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고사촬요』는 아직 번역되지 않아 내용이 궁금했는데 『임원경제지』와 『산림경제』에 일부가 수록되어 있었다. 건축 관련 주요 고서인 『임원경제지』는 아쉽게도 대여할 수 없었으나 2005년 민속문화원에서 나온 『임원십육지』를 구비했다. 안타깝게도 보다 정확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초고(草稿)는 일본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에 있고 아직 번역 작업 중이다.
조선시대의 건축 관련 문헌은 크게 왕실 의례나 행사를 기록하기 위해 만든 ‘의궤(儀軌)’와 개인이 저술한 ‘유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의궤를 살펴보면, 조정의 행사 관련 사실을 기록한 의궤 중 건축과 관련된 것을 ‘영건의궤(營建儀軌)’라 부른다. 영건의궤는 17세기 이후 건축공사에 관한 기록물 가운데 가장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에 관한 연구결과는 최근 『영건의궤: 의궤를 통해 본 조선시대의 건축』(2010)으로 출간된 바 있다.
의궤 외에 조정의 지원을 받았던 건축관련 서적은 행정편람서였던 『고사촬요』를 들 수 있다. 『고사촬요』는 1554년(명종 9)부터 여러 차례 간행되었던 조선의 중요한 실용서적이었다. 중국어 역관(譯官)이었던 어숙권(魚叔權)이 관료들과 일반인들에게 ‘생활의 지혜’를 보급하려고 저술했다. ‘일을 살핌에 필요한 지식을 요령 있게 갖춘 책’이라는 뜻의 『고사촬요』는 살기에 좋은 주거지의 지리적 조건, 주거지를 꾸미는 법 등 주택 건축과 관리에 필요한 실용지식들을 담고 있다. 『성호사설』, 『산림경제』의 「복거」를 거쳐 1842년 완성된 『임원경제지』 「상택지」편에까지 인용되었으며 삼백년 이상 활용되고 증보되었던 중요한 서적이다.
『고사촬요』는 임진왜란 이전 서적이라는 데에도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임진왜란 발발 십일일 째 선조(宣祖)가 도성을 떠나던 날 일부 백성들은 노비문적(奴婢文籍)이 있는 장예원(掌隷院)과 형조(刑曹)를 불태웠고, 궁궐 창고를 털면서 불을 질렀다. 고려에서 물려받은 서적, 조선 전기에 간행된 서적과 역사기록과 의궤, 중국에서 수입한 서적들이 불길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왜군은 한양 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문헌들을 조직적으로 약탈해 갔다. 임진왜란은 당대 조선뿐 아니라 조선 문헌사에도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힌 참화였다.
임진왜란의 참화로 인한 그 엄청난 파괴와 약탈 뒤에 새로운 흐름이 일어났다. 임진왜란 전에는 유교 경전을 중심으로 중국 서적을 수입했다면, 임진왜란 후에는 중국 당대의 다양한 서적들이 들어왔다.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세 차례나 북경에 다녀온다. 1611년 북경에 다녀올 때 구해 온 책 중에는 중국 당대의 문인 왕세정(王世貞)이나 양명좌파(陽明左派) 초횡(焦竑)의 서적,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천주교 교리서 『천주실의(天主實義)』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수광은 다양한 서적을 접하면서 기존의 세계관에서 벗어났으며 동시에 우리의 전통이나 물산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을 보여 주었다. 사학자 신병주는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2007)에서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세계문화 수용에 진취적 입장을 취했다는 면에서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이 돋보이는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지봉유설』에 언급된 건축 관련 내용은 제19권 ‘궁실(宮室)’ 부분에 나온다.
이수광과 동시대인으로 동서지간이었던 허균(許筠)은 광해군(光海君) 때 1614년과 1615년 두 차례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그 시대 중국 서적을 사 천여 권이나 구입해 왔다. 『한정록』은 1610년에 중국의 『세설신어』의 「서일전」, 『와유록』, 『옥호빙』 등의 서적을 중심으로 편찬한 책이다. 그는 죽기 전인 1618년에 『한정록』을 다시 엮었는데, 중국 서적에서 인용한 부분이 많으나 주택의 지리 조건에 관해서 서술하고 직접 농사지은 경험을 추가했다.
뒤이어 나오는 『반계수록』 『성호사설』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 백과사전류 유서의 저자들은 『고사촬요』와 『지봉유설』, 『한정록』의 내용들을 인용하면서 그 시대에 새롭게 축적된 지식과 중국 서적을 통해 계속 유입된 정보들로 당대에 필요한 책을 저술했다.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은 실학을 체계화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젊은 시절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현실을 목격한 경험이 그의 학문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전라도 부안현 우반동(반계)에 정착한 유형원은 선친이 남긴 만 권의 서적을 읽으며 1670년 『반계수록』을 저술했다. 『반계수록』은 모두 스물여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24권에 이은 두 권의 속편에 각종 의관, 언어, 도량형, 도로, 수레 사용과 함께 주택 관련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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