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옛집, 지혜로운 삶의 공간_한옥문헌전 | 주제연구

전통가옥의 건축적 특성
강영환(姜英煥) 울산대 건축학과 교수
열화당책박물관에서 기획한 한옥 문헌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옛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하고자 전통가옥의 특성을 3부로 나누어 명쾌하게 설명한, 『문화재대관—중요민속문화재: 가옥과 민속마을』 1권에 실린 글을 싣는다. 원고 사용을 허락해 주신 강영환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지면 관계상 일부 축약했다.—편집자
이 글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특성을 시대·지역·계층별로 나누어 살펴본 것이다. 조선 오백 년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정치적·사회적 환경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사대부들이나 일반 백성들이 사는 가옥의 양상도 달라졌다. 동시대라 할지라도 지역에 따라 가옥의 구조가 다른 것도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삶을 산 사람들의 당연한 결과물이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계층 구분이 엄격한 조선의 가옥이 신분에 따라 집의 구조나 형태가 다른 것도 조선시대 주거문화의 일면이다.
먼저, 가옥의 시대적 특성을 조선 전기·중기·후기로 나누어 살펴보자. 조선 전기 주택의 핵심적 요소는 성리학적 생활문화의 시작과 사대부 주거의 형성이다. 조선의 지배계층인 사대부들은 나라를 다스리기 전에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자신과 가정을 다스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유교적 생활문화의 정착과 확산에 따라 주거 안에서 몇 가지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진다.
첫째, 가묘(家廟) 건립의 확산이다. 가묘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다. 가정에서의 사대부들의 핵심적 생활행위는 ‘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례는 모든 가정의례의 중심이었다.
둘째, 내외법에 따른 남녀의 영역 구분이다. 내외란 성리학적 윤리관에 따라 남녀 간에 지켜야 할 행동규범이다. 가정 안에서 남녀의 역할이 다르고, 같이 자리하지 않으며, 심지어 음식도 한 상에서 먹지 않는다. 부부 간에도 합방할 때를 제외하고는 같은 침실을 쓰지 않는 것을 예의로 여겼다.
셋째, 가족 형태의 변화다. 고려의 양변적(兩邊的) 직계가족 형태가 조선으로 접어들면서 가부장적(家父長的) 직계가족 형태로 변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 가장 중한 것은 가족을 대표하고, 제사를 모시고, 규칙을 정하고, 가사를 감독하는 가장의 역할이다. 따라서 가장의 생활공간인 사랑채 영역이 주거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고, 그에 따른 권위적·장식적·건축적 장치도 요구되었다. 그러나 조선 전기는 이러한 주거 형태가 시작하는 초기단계이므로 중기만큼 엄격한 형식을 갖추지는 못했다. 장식성도 그리 화려하지 않고 영역 구분에 의한 독립성도 미약한 것이 전기 주택의 특징이다.
조선 중기의 주택은 지역과 계층의 규범적 형식을 골간으로 하되 개인적 취향을 반영한 개별적 변형이 핵심이다. 16세기 이후 종법질서의 확립과 성리학적 생활문화의 정착으로 가장의 권위가 강화되고 역할이 증대됨으로써 사랑채의 영역이 확대되고 기능이 분화되었다. 따라서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랑채의 확대다. 조선 전기 주택의 사랑채는 손님을 접대하는 작은 부속 공간에 불과했으나, 중기에 이르러 내외법의 정착에 따라 안채와 격리된 가장의 일상적 거처가 필요하게 되었고, 따라서 사랑채의 확대는 필수적이었고 사랑채는 다른 건물과 차별화되는 형태적·장식적 모습을 수반했다. 가장의 거처이자 학문 공간인 사랑채는 그의 권위를 표현하는 상징이며, 외부인에게 그 집의 품격을 표현할 수 있는 일차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중기에는 사랑채에 누정을 두기도 하고 더불어 별당도 발달하였는데 이는 조선 중기 사대부들의 개별적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가 주거 형태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양란 이후에 신분제가 이완되고 양반 인구가 증가되었다. 면천(免賤)과 수직(受職)으로 서민들의 신분이 양반으로 상승되기도 하고, 역으로 당쟁으로 실세한 양반들이 잔반(殘班)으로 몰락하기도 했다. 일부 농민들은 농업기술의 혁신과 경영의 합리화를 통해 농업 생산력을 증대함으로써 경영형 부농이나 서민지주로 성장하기도 했다. 양란 이후 이러한 신분질서의 변동에 따라 신분이 상승된 서민들은 주거수준을 향상시키기도 했고, 반대로 자영농이나 소농으로 전락한 실세(失勢) 양반들은 서민계층의 주거 양식에 편입되기도 했다. 생활의 편리성과 농업 생산을 중시하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부농들의 주택은 안채의 개방, 창고 규모의 확대 등 계층적 규범에 구속되지 않고 개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건축방법을 시도하였다.
다음으로 가옥의 계층적 특성을 양반주거·중인주거·서민주거로 나누어 살펴보자. 전통가옥은 주인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력에 따라 건축의 규모나 성격이 달라진다. 조선의 계급은 대략 상위 지배계층인 양반, 중간 지배계층인 중인, 피지배계층인 양인, 최하층인 천민의 네 계층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각 계층은 자신들의 사회적·경제적 조건과 생활방식에 맞는 주거방식을 생성했다. 차례대로 그 특징을 살펴보자.
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 반가(班家) 건축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행랑채를 가지고 있다. 조선 후기 노비의 면천이 있기까지 사대부가는 노비들을 거느렸고 행랑채는 그들의 거처이자 작업공간이었다. 행랑채는 주인의 영역을 보호하는 관문이자 방호막이었기 때문에 그 규모는 주인의 사회적 신분과 경제력을 상징했다. 그리고 거대한 행랑채와 솟을 대문은 상류주거임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둘째, 주거영역이 여러 채의 건물과 공간으로 분화된다. 이는 대가족을 수용하고 유교적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반가 건축은 행랑채, 사랑채, 그리고 안채 영역으로 구분되며, 각각 건물과 마당이 있다. 또한 주거공간을 대표하는 대청도 있다. 이것은 주거의 품위와 권위를 포함하는데 신분이 높을수록 대청이 높고 넓다. ‘육간대청(六間大廳)’은 고관대작의 주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셋째, 보다 내구적 내력적 구조를 가진다. 주요 구조부재는 역학적 필요성만이 아닌 권위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 지름 1척 이상의 기둥과 보를 사용하는 것은 구조적 차원을 넘어 장중함의 표현이다.
넷째, 입면의 의장적 고급성이다. 반가의 주택은 외장의 고급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든 재료는 최고급으로 선택한다. 기와지붕도 처마를 길게 돌출하여 ‘날아갈 듯한 지붕선’을 만든다. 이것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으로 묘사될 만큼 강한 계층성을 표현한 것이다.
신분의 구별이 엄격한 조선에서 양반 다음 계급인 중인층은 대부분 서얼 출신으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관직이나 승진의 기회가 한정되어 그리 높은 벼슬을 얻지는 못했다. 그들은 사회적·경제적으로 중간계층에 속하였기 때문에 양반주택을 모방하는 주거양식을 취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은 주로 비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대부분 생산 공간 없이 살림채와 대문채로 구성된 반가와 민가의 중간 형태를 취했을 것으로 본다.
 조선사회의 양인은 절대 다수가 농민이었다. 이들에게는 사대부의 상징인 권위의 표현이나 유교적 생활방식보다는 농업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주택이 필요했고, 지역의 자연환경에 경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주거형태를 갖추었다. 이들의 주거를 양반의 ‘반가(班家)’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민가(民家)’라 부른다. 유가적인 신분적 권위의 표현이 필요하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주생활공간과 생산공간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마당은 농산물의 건조, 갈무리, 타작 등을 위한 작업공간으로서 중요한 생산공간의 기능을 가진다. 생활공간도 크게 나누지 않아 네다섯 칸 정도의 소규모 살림채를 구성하고 있다. 반가와는 달리 대부분의 민가는 자력이나 지방의 장인이 짓고 주변의 천연 재료를 이용하여 비교적 단순한 기술로 만든다. 대신 반가에서는 볼 수 없는 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표출되는 토속성이 민가의 특징이다.
최하위 계급인 천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만을 갖춘 집에서 열악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적 특성을 북부·남부·도서지역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주택의 지역성은 강한 풍토성을 지닌 민가뿐만 아니라 반가에서도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북부 산악지역에서는 폐쇄적이고 공간집중적인 ㅁ자형을, 남부지역에서는 개방적이고 분산된 三자형을, 중부지역에서는 집중과 분산의 절충적 형태를 지니고 있다. 주거유형의 이러한 지역적 차이는 조선 초기 상류주택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역적 차이는 조선 후기 민가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서민들은 생태환경에 보다 경제적으로 대응해야하므로 자연스럽게 강한 풍토성을 나타낸다.
한반도의 북부지역은 추운 기후조건과 산지가 많은 지형조건 때문에 논농사보다는 화전이나 수렵에 주로 의존했으며, 그러한 생활은 노동집약적인 생산양식이 아니기 때문에 큰 마을보다는 소규모 마을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적 조건과 생업조건에 대응하기 위해서 난방과 방어의 효율성을 중시하게 된다. 적은 연료로 장기간 난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북부지역에서는 온돌난방이 발달하게 되고, 작은 규모에 야수와 도적 같은 외부의 적에 대응하기 위해서 방어의 효율성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데, 이를 위해서 건물을 하나로 집중시키는 구조가 발달하게 된다. 추운 겨울에는 외부 활동이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모든 주생활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만든 것이다.
집중형 주거는 방이 겹으로 배열되는 ‘겹집’의 평명형식을 갖는다. 겹집형 평면구성은 구조경간이 넓어지기 때문에 오량가구(五樑架構)를 사용하게 되고 지붕은 팔작지붕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 또 외벽을 두껍게 만들고 두꺼운 반자로 천정을 마감하며, 창이나 문의 면적을 줄여 폐쇄적 입면구성을 만든다. 강원도, 경기도, 경북 북부지역에서는 집중적 주거형태의 주택이 많다.
남부지방은 북부에 비해 여름이 길고 고온다습하여 비교적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논농사가 발전했는데, 이를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따라서 생산지를 중심으로 비교적 규모가 크고 밀도가 높은 마을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자연환경적 조건과 생업조건에 대응하여 주거건축은 농업과 관련된 넓은 외부 공간과 통풍과 환기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이를 위해서 건물을 분산시키고 각 공간에서 외부로 통하는 개구부를 가급적 많이 갖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가축의 사육공간이나 방앗간 같은 작업공간은 악취와 소음이 심하기 때문에 주거공간과 분리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독립된 외부 공간으로서 넓은 마당을 두고 살림채와 부속채를 분리시켰다. 살림채와 부속채가 독립적인 건물로 분리되면서 넓고 개방적인 안마당을 둘러싸는 것이 그 특징이다. 살림채는 일자형 홑집으로서 채광과 통풍에 효과적인 형태를 취하고, 많은 부속공간을 수용해야 하는 부속채는 양통형의 평면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넒은 창호와 툇마루가 발달한 것도 남부지역 주거의 특징이다.
육지와 생태환경이 전혀 다른 도서지방에서는 특수한 형식의 주거가 발달해 왔다. 한반도에서 가장 온난한 반면 바람이 거센 제주도는 여러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분산형 주거의 특성을 갖지만 살림채는 폐쇄적인 돌담으로 둘러 ‘겹집’의 평면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살림채 중앙에 마루가 있다는 점에서 북동부 지방의 겹집과 차이가 있다. 취사용 아궁이와 난방용 아궁이가 구분되어 있다는 점도 겹집의 공간구성이 보온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건물의 높이는 최대한 낮추고 지붕은 줄로 묶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했다. 제주도의 ‘겹집’은 보온이나 방어의 필요성이 아닌 방풍의 필요성으로 만들어졌다.
폭설로 외부와의 통행이 어려운 울릉도에서는 살림채가 홑집이지만 마구나 헛간과 같은 부속공간이 붙어 있고, 처마 밑에 ‘우데기’라는 가벽을 설치한 ‘우데기 집’을 만들었다. ‘우데기’는 방설벽으로 눈이 내부공간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건물의 외부를 두른 벽이다. 한편 내부의 벽도 통나무를 수평으로 뉘어 쌓아 만든 ‘귀틀벽’으로 만드는데 이는 내력벽 구조로서 수직하중에 강한 구조다. 이런 구조로 일반적인 목구조로는 버티기 힘든, 지붕 위에 쌓인 눈의 하중을 지탱할 수 있게 했다. 도서지방의 가옥을 육지와는 다른 형태로 만든 것은 그들이 가진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전략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민주택인 민가는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에 맞는 독특한 형태를 갖추었다. 상류주택에 비해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서민의 생활과 직결된 경제적·실용적 측면을 고려한 효율적인 가옥형태를 고안했다. 그 결과 민가는 한국 주거문화의 보편적 성격을 보여주는 민속적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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