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시대의 기록 전| 세계 잡지사의 한 장면

‘위대한 시대’의 잡지 디자이너 네 명을 만나다.

짐 넬슨 블랙 글, 정병규(정병규학교 대표) 옮겨엮음

「잡지, 시대의 기록」전의 특강을 요청받으면서 열화당책박물관에서 잡지에 관해 쓴 글이 있냐고 물어 왔다. 며칠 후 생각 난 것이 언론연구원 총서 제5권으로 발행된 『세계의 잡지』(1988)에 실린 「현대 잡지디자인의 경향과 전망」이란 글이었다.

육십년대 이후 꽃피운 미국 잡지의 ‘위대한 시대’는 유럽 디자인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의 시각디자인, 즉 현대 편집디자인의 황금기였다. 그래서 ‘잡지는 디자인의 꽃’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글에 등장하는 네 명의 아트디렉터들은 이 위대한 시대를 이으면서 앞으로 도래할 디지털 시대의 광풍 사이에 위치한다. 그들은 현대 편집디자인의 최고 수준을 펼쳐 보인 개성있는 인물들이었다.

이 글의 원제는 「잡지디자인: 그 진화(Magazine Design: The Evolution)」로, 잡지디자이너이자 저술가인 짐 넬슨 블랙(Jim Nelson Black)이 ‘잡지에 관한 잡지’로 유명한 『폴리오(Folio)』 1983년 11월호에 쓴 것이었다. 블랙은 당대의 유명 아트디렉터 네 명을 인터뷰하여 이 글을 썼는데, 번역하면서 필요한 곳에는 이 글의 주제에 부합하는 나의 생각들을 곁들였다. 본문 속의 인용문들은 모두 원저자가 인터뷰한 각 아트디렉터들의 말이다.

월터 버나드(Walter Bernard)는 『에스콰이어』의 어시스턴트 아트디렉터를 거쳐 1968년부터 구 년 동안 『뉴욕』의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1977년 그가 리디자인한 『타임』은 그래픽과 일러스트레이션 측면에서 시사주간지의 혁신을 가져왔다고 평가된다. 1983년 밀턴 글레이저와 함께 더블유비엠지(WBMG)를 설립하여, 백 권 이상의 미국, 유럽, 아시아의 잡지 디자인 및 리디자인을 했다. 밥 시아노(Bob Ciano)는 『라이프』 『뉴욕 타임스』 『에스콰이어』 『트래블 앤드 레저』 등 유수의 잡지의 아트디렉터로 일했고, 캔사스 대학, 스탠포드 대학 출판 과정,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의 수석 겸임교수로 있다. 메리 보먼(Mary K. Baumann)은 『지오』의 아트디렉터였고, 그 밖에 『피플』 『라이프』 『머니』 『아키텍추럴 다이제스트』 『키즈 디스커버』 등에서 디자인 일을 했다. 현재 미니애폴리스의 전략적 디자인 회사 ‘홉킨스/보먼(Hopkins/Baumann)’의 파트너이면서, 예일 대학 출판 과정의 고문 및 교수로 국내외 시각 트렌드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로버트 베스트(Robert Best)는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 『뉴욕』 『프리미어』의 아트디렉터를 거쳐, 현재 『더 네이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삼십 년 전의 글을 다시 발표하는 것은 당시 전문총서에 실리는 바람에 널리 읽히지 못하였으므로 어쩌면 처음 공개되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핑계와, 이 글에 언급된 사실들이 디지털 시대의 도래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의 디자인 환경에서 볼 때, 편집디자인이 지키고 고민해야 할, 다시 되새겨 볼 만한 규범들이라는 판단에서이다. 수록 도판들은 모두 내가 골라 실은 것이다. — 옮겨엮은이

잡지 평론가들은 1968년에 클레이 펠커(Clay Felker)가 『에스콰이어(Esquire)』를 떠나면서 퇴직금을 가지고 창간한 『뉴욕(New York)』이 출판 디자인계에 중요한 전환점을 이뤘다고 보고 있다. 회고해 보면 확실히 『뉴욕』의 발간은 잡지 디자인의 개념을 변혁시키는 데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지금도 그 변혁은 계속 진행 중인데, 그 당시 창간된 『뉴욕』은 편집 내용과 디자인을 생동감있게 융화시켰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편집과 디자인이라는 각기 다른 창조과정이 서로의 요구를 충족, 보완을 시켜 새로운 통일체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뉴욕』을 성공시키고 난 후 『미즈(Ms.)』 창간에 깊이 관여했고, 이후 다시 『에스콰이어』의 편집자로 돌아간, 『뉴욕』의 정신적 지주인 클레이 펠커는 독자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함으로써 잡지의 내용과 디자인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새로운 생각이란 한정된 지역 내에서 성공적인 잡지가 되려면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종래와는 다른 방법으로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정한 관점에 따라 진행되었다. 디자인이란 쉽게 말해서 잡지의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다.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와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 옹호하고 싶은 것, 접근하고 싶은 방향에 대해 충분히 견해가 일치되었고, 또한 우리는 잡지디자인 방법을 고도로 정교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마감시간에 맞춰 매주 발행할 수 있을 만큼 단순화시키고 싶었다.”

“잡지는 독자들이 내용을 읽지 않고 단지 면을 훌훌 넘기면서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뭔가를 얻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면서도 내용을 골라서 읽고 나면 더 깊은 차원에서 또 다른 것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잡지는 두 가지 차원에서,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독자에게 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독자들은 바쁘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메시지를 빨리 전달해서 독자로 하여금 잡지를 집어 들고 다음 기사를 계속해서 읽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게 디자인을 통해 유도를 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잡지를 디자인했다.”

『뉴욕』에 구체화되어 나타난 디자인 변화의 특징은 기사내용에 따른 부문별 구분(compartmentalization)을 분명히 한 점, 잡지의 후반에 실리던 특집기사를 없애 버린 점, 잡지의 앞과 뒷부분에만 넣던 양면광고를 잡지의 전 지면에 걸쳐 군데군데 싣기로 한 점, 그렇게 함으로써 야기되는 특집지면의 희생을 과감히 감수한 점 등이다. 그 결과 뉴욕은 품위있는 정보로 가득 찼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구조는 그 당시 가장 놀랄 만한 외형이 되었다. 그러한 변화가 당시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는가. 『보그』 『하퍼스』 『홀리데이』 『쇼』 『콜리어스』 등의 큼직큼직하고 ‘우아하며 자극적인 디자인’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의, 소위 잡지의 ‘위대한 시대(grand era)’라 불리던 디자인적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말이다.

『뉴욕』이 창간되던 때의 잡지들은 50여 면이나 계속되는 풍성한 편집지면에다 화려한 그래픽이 대부분이었고 고정란(department)은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잡지는 한가한 독자 세대에게 적합했으며, 또한 그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타임』 『포춘』 『애틀랜틱』을 리디자인(re-design)한 것으로 유명한 월터 버나드(Walter Bernard)는 ‘위대한 시대’의 잡지와 새로운 스타일의 잡지를 동시에 디자인해 본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다. 그는 『에스콰이어』의 창간 편집자인 아놀드 깅리치(Arnold Gingrich)가 발행하는 『에스콰이어』의 스태프이기도 하며 『뉴욕』을 만들어낸 팀의 일원이기도 했다. 버나드는 ‘위대한 시기’가 지나가 버린 것을 아쉬워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 추세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경향임도 잘 알고 있다.

월터 버나드, 선구적 역할

“지난 십오 년 동안 잡지 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경제였다”고 버나드는 말한다. “나는 『에스콰이어』가 대형잡지였을 때 일할 수 있었으므로 매우 행운이었다. 변화를 주느라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그 잡지는 전통적인 잡지였다. 계속되는 특집지면이 40면 정도였고, 앞과 뒷부분에 광고가 실렸으며, 스토리들은 건너뛰었다. 매우 시각적인 잡지였다. 오늘날의 『에스콰이어』는 신문 잡지 판매점이나 정기구독에 의해 유지되지만 과거와 같이 화려하지도 않고, 그에 따른 특혜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뉴욕』의 새로운 모습

“잡지는 이제 더 이상 지난 사십년대나 오십년대와 같이 화려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뉴욕에 의해서 만들어진 변화는 아주 큰 것이다. 내가 창간작업에 참여한 일원이었기 때문에 하는 얘기는 아니다. 매주 발행되는 시티매거진이라는 점, 그에 따른 일정한 기준에 따라서 시각자료들을 결합시키는 특성 때문에 하는 말이다. 충분히 연구를 할 시간도 없었고 종이의 질도 별로 좋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에 쫓기며 만들기도 했었지만 그 당시의 다른 어떤 주간지보다도 훨씬 시각적이었다.”

“뉴욕의 초창기에 편집지면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광고물이 풍족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각들을 팔고 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현란한 편집지면의 독자와는 다른 독자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므로 생생한 편집으로 구태의연한 편집태도에 대항하였다. 이러한 생각이 결과적으로 중성적인 포맷을 고안하게 되었고, 거기에다 우리는 대중에게 아주 낯익은 개성을 부여했다. 따라서 독자는 ‘이것은 광고물, 이것은 뉴욕’이라고 말하게끔 되었고, 그 양자를 분명히 구별할 수도 있게 되었다. 처음엔 그 포맷이 약간 보기 싫었고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실용적이었다.”

 재능의 활용

“그 당시 우리들은 포맷이란 단지 배경에 불과하며, 잡지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아트디렉터들이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사실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사진이 좋지 않거나 기사의 질이 떨어지면 페이지 디자인을 하는 그의 능력도 잘 발휘되지 않고 디자이너도 실패하기 때문이다.”

“전문잡지의 시대가 도래했다. 잡지산업은 번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분화된, 즉 소형전문지의 형태로 유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냥 나열식으로 게재하는 것 대신에 일정한 공식(포뮬러)을 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이 『뉴욕』을 만들 때 하던 방식인데, 그런 형태는 지금은 보편화되었다. 현재 『타임』은 그렇게 부문별로 나눠서, 구조를 체계화시키는 디자인의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타임』을 보면 기사 내용은 변화되어도 시각적 분위기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8년에 뉴욕이 창간된 지 얼마 후, 다른 잡지 발행자들도 포뮬러, 즉 활자체, 괘선(rules), 고정란 그리고 다른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것을 알고 싶어 했다. 1977년 『타임』을 새롭게 디자인한 후에 버나드도 그와 동일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디자이너들은 다른 사람들이 『뉴욕』이 했던 형태를 모방하는 데 너무도 열성적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런 잡지들로 인해 이룩된 혁명적인 발전을 보게 되면 그 관심은 정당한 것이 된다. 잡지계나 출판계의 발달사에서 이것은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팔십년대의 잡지 디자이너들은 잡지를 디자인하는 데 경쟁에서도 성공을 해야 하고 품위도 갖추어야 한다는 두 가지 딜레마에 직면해 있었다. 포맷과 컴파트먼트는 어떤 경우에는 효과적이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는 디자이너들도 있을 수 있다. 전문잡지의 디자인 방식은 하나의 다른 접근방법이 될 수 있고 슈퍼그래픽(super graphic)이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특기할 것은 사진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서 그것을 강조하는 방법일 것이다.

밥 시아노와 『라이프』

미국의 유명한 잡지 중에서 『라이프(Life)』는 여러모로 이름이 나 있다. 엄청난 변화를 겪는 동안에도 끊이지 않고 발행돼 온 생명력과 언제나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자료의 풍성함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끼친 영향력 때문으로도 유명하다.

4세대에 걸친 독자들에게 『라이프』는 모든 잡지를 대표하는 존재였다. 『라이프』를 말한다는 것은 곧 ‘잡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뉴욕』이 현대 시티매거진의 대명사라고 한다면, 『라이프』는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시각적인 독자, 즉 볼 줄은 알되 읽을 줄 모르는 독자 세대를 형성시킨 픽처매거진의 대표격이다. 시각적인 지식인이라는 말은 어떤 논평자가 현대 독자는 사진과 티브이(TV)로 인해 독서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들어 비유적으로 이론화시킨 용어이다.

『라이프』의 아트디렉터인 밥 시아노(Bob Ciano)는 —비록 그 자신이 사진을 매우 중시하긴 하지만— 위와 같은 지적은 잡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적인 현상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에게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나는 독자들이 글을 별로 안 읽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읽어야 할 글과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모자랄 정도이다. 따라서 뉴스잡지건 다른 무엇이건 간에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으면, 그들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게 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진 사용

“『타임』 『뉴스위크』 『비즈니스 위크』 『포춘』 등의 지난 호를 읽다 보면, 막상 즐거움을 안겨 주는 것은 정보 그 자체라기보다 사진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의 『라이프』와 현재의 『라이프』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면 무엇을 강조점으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라이프』는 이제 더 이상 주간지가 아니다.(지금은 월간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토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지속되는지도 알고 있으며 삼 주간, 오 주간 혹은 특정 스토리가 결말을 맺을 때마다 흥미도가 어떻게 될지도 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라이프가 시사성에 강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스토리는 뉴스가 전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진 스미스(Gene Smith)의 포토에세이, 레너드 윌슨(Leonard Wilson)의 갓난아기 사진, 그리고 의학사진들이었다. 그런 사진들은 일주일 내에 찍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풍경, 동물, 사막 그리고 정글 등과 같은 대형사진을 찍는 데에는 여러 달이 걸린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의 『라이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주일 동안에 일어난 특정한 뉴스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끝났다거나 대통령 선거가 있다거나 그 밖의 매우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거나 할 경우는 예외지만, 그리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에세이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스토리와 같은, 몇 주일 그리고 몇 달에 걸쳐 게재된 글이다. 그러한 것들은 뉴스기사가 아니었다.

만약 당신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경쟁을 한다면, 어차피 글이나 사진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라이프』는 다행히도 그런 면에서 성공을 거둔 잡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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