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시대의 기록 전| 전시여는 글

책을 다루는 잡지, 『출판저널』의 추억

이기웅  열화당책박물관 관장, 『출판저널』창간 편집인

열화당책박물관은 잡지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형식과 내용, 전달 방식, 사회적 역할과 존재방식 등에 주목하여 지속적인 수집을 해 왔다. 그 중간 점검이라 할 수 있는 「잡지, 시대의 기록」 전을 열어 소장 잡지를 시대별, 테마별로 살펴봄으로써, 근현대 한국사회의 흐름과 문화예술의 변천, 그리고 대중의 다양한 관심사가 어떤 방식으로 반영돼 왔는지 짚어 보고자 한다. 더불어, 이 전시에 선보이는 잡지들에 나타난 편집디자인의 개념과 기술의 변천 등을 통해 한국 출판문화의 어제와 오늘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올해는 우리 잡지가 백이십 년 되는 기념적인 해이기도 하다. 한국 잡지의 효시로 간주되는 최초의 근대 잡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는데, 일본 도쿄에서 활동한 ‘대조선인 일본 유학생 친목회’에 의해 1896년 2월 15일 창간된 『친목회회보』가 최초라는 주장과, 1896년 11월 30일 독립협회의 기관지로 발행된 『대죠선독립협회회보』가 우리나라에서 우리 힘에 의해 발행되었으므로 이것이 최초의 잡지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어찌되었건, 1896년이 우리 잡지가 최초로 발간된 해는 분명하므로, 올해로 백이십 세가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전쟁, 전후 재건의 시기, 1970-80년대의 민주화 운동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한국사와 희로애락을 같이한 것이 바로 잡지다. 바꿔 말하자면, 잡지의 역사 속에 한국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1930년대 이래의 국외잡지들은 같은 시기 서양과 아시아, 그 가운데 특히 일본과 중국의 주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명백히 보여 준다. 이것이 바로 ‘잡지는 그 시대의 기록’이라는 증거다.

서평지(書評誌)의 의미

우리가 모아 온 잡지는 종류나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 소장하게 된 계기나 과정마다 저마다의 사연과 의미가 깃들어 있는 귀한 것들인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국내외 출판동향을 알려주고, 신간 소개와 더불어 신간목록을 제공하고, 서평을 싣는 독서 안내 잡지인 출판지라고 생각된다. 현재 국내에서 발간되는 『출판문화』와 『출판저널』을 비롯하여 『뉴욕 타임스 북리뷰』 등 서양 서평지들도 오래도록 소장해 왔다.

내가 남다른 예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1987년 7월 29일 창간된 『출판저널』이다. 창간 당시부터 내가 관여한 그 잡지에는 나의 젊음과 열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봇물처럼 쏟아지는 잡지들은 해당 분야의 변화 과정과 발전적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그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 바로 출판물에 대한 비평을 실은 서평지이다. 이 전시를 기획할 즈음, 삼십 년 전 『출판저널』을 창간할 당시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창간 당시의 상황과 진행 과정을 간단히 기록하여 잡지전에 임하는 소회와 잡지에 대한 나의 철학을 간략하게 피력하고자 한다.

서평지의 모델,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뉴욕타임스 북 리뷰』 백주년 기념호

동서양을 합쳐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지는 단연 『뉴욕 타임스 북 리뷰(New York Times Book Review)』다. 이 서평지는 1896년 10월 창간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백이십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편집정신은 본받아야 할 ‘『출판저널』 창간의 이상(理想)’이었다. 이 서평지는 『출판저널』이 선보인 지 십 년 뒤인 1996년에 창간 백 주년을 돌이켜 보는 기념호를 냈는데, 그동안 이 잡지의 서평을 통해 얼굴을 보였던 작가들을 리뷰함으로써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이 매체를 거쳐 간 수천 명의 뛰어난 작가들 가운데 가려 뽑은 서평 리뷰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얼마나 감격했을까. 당시 한 명의 독자였던 나도 기념호를 들춰 보고 또 들춰 보며 감탄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감동으로 인한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렵다.

1903년 헬렌 켈러의 『내 인생의 이야기』, 1920년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1922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1925년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 1936년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40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1948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1949년 조지 오웰의 『1984』, 1966년의 『말콤 엑스 자서전』, 1970년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 1987년 톰 울프의 『허영의 모닥불』, 1991년 솔제니친의 『러시아 재건』 등 백 년 동안 이 주간지를 통해 선보였던 작가와 작품들을 뽑아 당시 이 서평지가 게재했던 평문을 그대로 실어 보여 줌으로써, 시간을 뛰어넘어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다. 이 서평들이 한결같이 이 세계를 수놓았던 책의 리더십이었음을 누가 부정하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출판계가 혈안이 되어 있는 ‘세계문학전집’의 목록에 모두 올라 있는 작품들이다. 이 부러운 목록들은 하루아침에 우리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다.

그 흥분의 원천은 폭증하는 대중전자매체와 생활유형의 소비화라고 하는 오늘의 부정적 힘에 대항해서 고급 문자매체의 기여기능을 어떻게 유지 확산시키느냐 하는 의도로 창간된 『출판저널』의 간행 목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우리는 왜 이런 서평 전문지 하나쯤 가질 수 없단 말인가.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 노력도 하지 아니하고 포기해야만 하는가. 나의 의문과 갈등, 자문자답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잠들 수 없었다. 이런 갈등과 번민 속에서 『출판저널』은 태어났다.

서평 정론지, 『출판저널』의 탄생

『출판저널』 창간호, 1987. 7. 20.

『출판저널』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걸쳐 우리 출판계의 대표적인 선배 출판인들에 의해 시도됐던 『독서신문』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해서 내가 발상하였다. 그 경험이라는 것은 바로 ‘자금’의 문제였다. 뜻이 아무리 고매한들 자금이 뒷받침되지 아니하면 구현될 수 없다. 출판저널리즘을 창출한다고 하는 멋들어진 『독서신문』의 계획은 자금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몇 호를 지속하지 못하고 깃발을 내리고 말았다. 소중한 경험이었으나 뼈아픈 사건이었다.

1970년 11월 8일 선배 출판인들에 의해 주간신문으로 창간된 『독서신문』이나, 1987년 7월 29일 격주간으로 창간된 『출판저널』이나, 모두 독서운동이며 책문화의 확장이라는 꿈 아래 출판저널리즘을 확립하겠다는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서신문』의 경험을 토대로 좀 더 내실있는 책의 매체를 검토하게 되었고, 그 결과 『출판저널』이 탄생되었다. 『독서신문』이 ‘신문’이라는 형태를 통해 지식문화의 대중화를 꾀했던 반면, 『출판저널』은 ‘잡지’의 형식으로 서평 전문지를 표방하면서, 가치있는 책의 소개, 학계와 예술계의 동정, 교육계와의 연대를 통한 독서교육의 심화 등을 꾀하는, 이른바 서평 전문지를 지향했다.

『독서신문』이 창간될 당시의 한국출판금고 이사회 회의록이나 기타 자료를 보면, 출판계의 부푼 의욕에 비해 재정상태가 너무나 열악해, 이런 매체를 왜 창간했으며 계속해서 과연 얼마나 속간(續刊)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의심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값있는 매체의 공익성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공적 자금이 투여돼야 한다는 의견과, 가능한 한 이 매체의 시장가치를 키워 시장에서 성가(聲價)를 올리거나 승부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그제나 이제나 마찬가지여서, 이같은 대립에서는 시장에서 성가를 올려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해질 수밖에 없다. “장사(상업주의) 앞에는 장사(壯士)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출판에 있어 ‘책의 시장논리’에는 다분히 허구가 있음을 나는 알고 있기에, 『독서신문』이든 『출판저널』이든 올바른 책의 정론지(正論誌)라면 공적 자금을 투여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의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나는 『출판저널』 창간을 위해 1986년부터 그 이듬해에 이르도록 일 년 이상을 뛰어다녔다. 다양한 출판인 그룹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 매체 창간의 뜻을 역설하고, 해당 관공서(당시의 문화공보부)의 실무 주사(主事)에서 장관에 이르도록 일일이 찾아다니며, 창간에 필요한 지원책을 거듭해서 피력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모든 의견들을 종합하고 여타의 자료들을 수합하여 ‘매체 창간 계획서’를 작성했고, 한국출판금고(오늘의 한국출판진흥재단) 이사회와 이사장에게 이를 지속적으로 개진하여, 『출판저널』 창간의 당위성을 설득했다.

이런 노력 끝에 만들어진 『출판저널』의 창간사는 우리의 깃발이었다. 창간사는 우리의 얼굴이었고, 우리의 명운(命運)을 미리 이 사회에 약속하는 서약의 글이어야 했다. 당시 한국출판금고의 이사장이며 을유문화사 회장이었던 고 정진숙(鄭鎭肅) 발행인 명의로 제시될 창간사의 초록을 들고 편집인이었던 나는 며칠 동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책(활자)의 환경’은, 지금도 그렇지만 1987년 당시는 뭔가 위기상황이 곧 벌어질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 때였으므로, 창간사는 그 위기극복의 사명을 분명히 제시하는 내용이어야 했고, 그래서 편집인으로서는 크게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1986년의 책 발행 통계는 3만7천 종, 1억4천만 부로 제시되었다. 이같은 활기찬 출판계의 양적 팽창을 어떻게 질적 발전으로 전환시키느냐가 우리의 숙제였다. 뿐만 아니라, 그 해 7월에 개정 발효될 저작권법과, 이어 10월 국제저작권조약에의 가입을 앞두고 있던 우리 출판계로서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도모해야 했다. 또한 다가올 디지털혁명이라고 말하는 정보 처리 및 응용의 기술을,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규모와 성격의 윤곽은 예감하고 있던 터였으므로, 도전의 형식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접속과 수용의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부지런히, 건강한 출판문화와 출판산업의 틀을 마련해서 변화하는 기술 환경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강조해야 했다.

이어서 『출판저널』의 책무는 도서관과 서점과 같은 문화공간의 확대에서부터 유통구조의 합리화, 독서풍토의 개선이라는 종래의 숙제를 풀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 나가야 할 처지였다. 이처럼 우리 숙원의 출판전문지는 도서 생산자와 독자, 그리고 공급자 사이의 신속하고도 유기적이며 성실한 소통의 회로로서 역할하면서, 학계의 동정에서 독서교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도서문화의 확장과 충실화에 기여하는 교양지로서 몫을 다할 것을 다짐해야 했다. 창간사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한 일들을 다하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한국출판금고로부터 발간비를 전적으로 지원받음으로써, 시장성에 매인 얄팍한 편집태도와 기사작성을 원천적으로 피하면서, 의연하면서도 독자적인 공론성(公論性)을 유지토록 한 것입니다. …책을 즐기고 책의 가치를 존중하는 이들 모두의 어울림과 도움, 야단침과 부추김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우리의 전환기적 과정에서 도서-독서문화의 체질 개선과 구조강화, 가치창조, 의미부여의 역할에 『출판저널』이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엄숙히 약속드리는 바입니다.”

이 잡지는 이른바 ‘책을 다루는 책’이기 때문에, 출판의 역사가 이제까지 이룩했던 수준 높은 한 전형(典型)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 창간을 준비할 당시의 생각이고 의욕이었다. 그러나 내용에서나 형식에서 그와 같은 완벽한 모습을 보여 준다는 일은 막상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깃발을 내려라”

『출판저널』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창간 이후 십오 년간 발행된 『출판저널』이 재정난에 부딪혀 2002년 6월로 한 시대의 막을 내렸고, 2003년 2월부터는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의해 속간되었다. 이때 전 『출판저널』 기자들이 모여 『차라리 깃발을 내려라』라는 작은 책 한 권을 엮었다. ‘출판저널을 위한 기억의 편람’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의 서문을 이승우 전 편집주간이 썼는데, 그의 글에는 『출판저널』이 막을 내리게 된 저간의 사정과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범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우뚝한 존재인 『출판저널』의 운영을 업계의 일부를 대표하는 이익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이관하게 된 것은 출판금고 측의 책임 회피요 직무 유기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했다. 그동안 『출판저널』 편집진이 ‘출판의 꽃’인 단행본 중심의 편집 방침을 일관되게 고수해 온 데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표출해 온 축이 출판금고의 주도적 주체인 일부 비단행본 출판인들이었다는 사실은 분명 아이러니다. 당시 국내 유수의 단행본 출판사 대다수는 출판협회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협회의 주도 세력은 비단행본 출판인들이 주축을 이룬다. 그렇다면 2003년 2월 속간된 『출판저널』의 향후 성격과 위상이 어떻게 변질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결코 비단행본 출판사를 폄하하거나 과소평가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양쪽 모두 ‘출판문화’라는 큰 테두리 속의 두 수레바퀴임에는 틀림없으나 창간 당시와 속간된 같은 이름의 출판 잡지의 지향점이나 몫이 다르다는 뜻이다.”

공정성이 생명인 서평지가 상업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서평지가 될 수 없으며, 신간 안내지라 해야 옳다. 공정성을 목표로 한 창간 당시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의해 속간된 이 잡지는 2009년 3월 다시 한번 발행기관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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