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주년 기념 상설전 | 작가의 선물: 열화당 소장품전

작가의 선물
열화당 소장품전

* 열화당책박물관 2층에서 일부 작품만 상설전시 중입니다. (1층에서는  「한국음악 문헌전: 자연의 소리, 혼이 담긴 선율」전이 진행 중입니다)

「열화당 마흔다섯 해의 자화상」 전시의 첫번째 연계전시로 열화당 소장품전  「작가의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그 동안 책을 통해 맺어진 인연을 증거하는 작품들로, 그 일부만 선보입니다.

민중미술가 오윤, 홍성담, 임옥상, 사진가 황규태, 강운구, 주명덕, 김중만, 이갑철, 북디자이너 정병규, 안상수, 작가 존 버거, 전우익, 동양화가 장우성, 문봉선, 조각가 김세중, 최종태, 서양화가 방혜자, 김혜련, 정재규, 연필화가 원석연, 역사학자 이석우, 만화가 김성환, 미술사학자 김원용, 강우방, 건축가 김중업, 민현식, 김인철, 플로리안 베이겔, 필립 크리스토 등 각각의 작품에 얽힌 사연과 연관된 책 들이 함께 소개되어, 열화당 출판공동체의 한 풍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전시된 몇몇 소장품과 사진과 함께 그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전시가 진행되는 중에 더 추가될 작품이나, 이번에 소개되지 못한 소장품들의 사연도 계속해서 하나씩 정리해 갈 예정입니다.

 

오윤. 12세면 숙녀예요. 1996. 천에 목판. | 정병규. 『아뽈리네르』 표지를 위한 작업. 1996. 종이에 실크스크린. | 김중만 . 섹슈얼리 이노선트 Sexually Innocent. 니스. 1975.

오윤. 12세면 숙녀예요. 1986. 천에 목판.
민중미술가 오윤(吳潤, 1946-1986)의 작품으로, 열화당이 『현실과 발언: 1980년대의 새로운 미술을 위하여』(1985)를 출간한 직후 ‘현실과 발언’(현발) 동인들이 감사의 뜻으로 발행인에게 선물한 것이다. ‘현실과 발언’은 김윤수, 유홍준, 전준엽, 성완경, 김정헌, 강요배, 이태호, 오윤 등이 미술의 새로운 표현, 언어, 내용을 모색하며 1979년 11월 결성한 미술동인으로, 1980년 창립전을 갖고 첫번째 동인지 『그림과 말』(1982)을 출간했다. 『현실과 발언』은 ‘현발’이 태어난 지 오 년이 지나 나온 두번째 동인지로, 책머리에 이 책이 “단순한 자료적 의미를 넘어 앞으로의 동인 활동에 대한 반성적 지침이 되고 또한 팔십년대 미술 인식의 한 단면으로 실질적인 뜻을 지니는 문화적 축적으로 남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병규. 『아뽈리네르』 표지를 위한 작업. 1996. 종이에 실크스크린.
1980-1990년대 열화당의 굵직한 시리즈와 대표 도서 들을 디자인한 한국의 일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鄭丙圭, 1946- )의 작품으로, 열화당에서 출간된 『아뽈리네르』(파스칼 피아 저, 황현산 역)의 1983년 개정판 표지 배경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시기 열화당 발행인은 프랑스 에스티엔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정병규를 만나 북디자인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83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정은 독자를 일차적으로 만나는 순간이므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이 책의 개정판(2,000부 발행)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폐기처분하고 정병규에게 의뢰해 다시 만들었다는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1996년 디자이너의 오십 세 생일을 맞아 연 「정병규 북디자인」전에 대형 실크스크린 작품으로 제작해 전시했던 것이다.

김중만. 섹슈얼리 이노선트 Sexually Innocent. 니스. 1975.
사진가 김중만(金重晩, 1954- )의 초기 사진으로, 프랑스 유학 시절 이방인으로서 겪게 되는 이질적인 시각 환경이 ‘순결한’ 흑백공간으로 탄생했다. 1970년, 정부 파견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로 떠난 열여섯 김중만은 학교도 마땅히 없는 시골 마을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고,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 짧은 시간에 인화되는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열화당사진문고 시리즈 『김중만』(2015)에는, 사진가의 첫 프레임이 시작된 이 연작을 비롯해 최근까지의 주요 작품이 그가 직접 쓴 글과 함께 실려 있다.

강운구.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1996. | 원석연. 설경. 1990. 종이에 연필. 『원석연』 중에서.

강운구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1996.
열화당에서 『경주남산』(1987) 『우연 또는 필연』(1994) 등 대표적인 사진집들을 낸 강운구(姜運求, 1941- )의 사진으로 두 컷이 한 쌍을 이룬다. 왼쪽 사진은 멀리 떨어져서 전체를 본 것인데, 앞에서 열화당 발행인 이기웅(李起雄)이, 뒤에서 소설가 조세희(趙世熙)가 자동차 수리점을 찍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두 사람이 찍던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서 있던 주인은 가고 강아지가 와 있다. 관심은 벽에 기대 놓은 그림에 있었는데, 진도대교 건설 현장에 걸어 두었던 진도 해안을 그린 것이다. 세 사람은 전국을 누비며 함께 많은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당시 작가, 사진가, 출판인 사이에 이루어진 교유의 한 순간이기도 하다.

원석연. 설경. 1990. 종이에 연필. 『원석연』 중에서.
원석연(元錫淵, 1922-2003)은 황해도 신천 출생의 연필화가로,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그의 이름과 작품은 유난히 알려져 있지 않다. 연필화가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지켜 나가며 점점 더 단절과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갔던 탓이었다. 그런 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 온 갤러리 아트사이드 이동재 대표는 작가의 십 주기를 맞아 기념전시회를 마련하고 작품집 출판을 열화당에 의뢰해 왔다. “연필색도 색이다. 구사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색감과 질감을 나타낼 수 있다”는 그의 ‘연필 오채론(五彩論)’의 신념이 이 풍경화에도 잘 담겨 있다.

존 버거. 사랑의 파슬리. 『벤투의 스케치북』(2012) 한국어판 서문을 대신하여. 2010. | 전우익. 목가구 1990년대.

존 버거. 사랑의 파슬리. 2010. 『벤투의 스케치북』(2012) 한국어판 서문을 대신하여.
2004년부터 지금까지 존 버거(John Berger, 1926- )의 책 열다섯 권을 낸 열화당은, 책을 낼 때마다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을 부탁해 실어 왔다. 2012년 출간한 『벤투의 스케치북』은 철학자 스피노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느낀 면면을 글로 쓰고 또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드로잉이라는 행위에 대한 탐구이다. 존 버거는 특별히 이 책의 서문을 직접 그린 드로잉으로 대신해 보내오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이 사랑스러운 파슬리 드로잉은 오직 이 책의 한국어판을 위한 작품입니다.”

전우익. 목가구. 1990년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993)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1995)의 작가이자 농사꾼 전우익(全遇翊, 1925-2004)이 선물로 만들어 준 목가구. 그는 생전에 열화당을 좋아해서 여러 개의 의자를 손수 만들어 보내 주곤 했다. 그는 절대로 산 나무를 베어서 쓰지 않고, 넘어진 나무, 썩어 쓰러진 나무에서 쓸 만한 부분을 도려내어 사용한다. 그런 그의 마음과 솜씨가 그대로 담긴, 무정형이나 정답고 인간미가 물씬 나는 가구다. 그는 “나는 좌익인데 이름은 우익이지요”라며 주위 사람들을 웃기곤 했는데, 이 시대를 향한 놀라운 풍자였다.

존 버거. 하얀 새. 2015. 나무.

존 버거. 하얀 새. 2015. 나무.
이 새 조각은 2015년 존 버거(John Berger, 1926- )가 선교장 열화당 건립 이백 주년을 축하하며 준 선물로, 그의 친구인 소설가 넬라 비엘스키(Nella Bielski)의 파리 자택에 걸려 있던 것이다. 그는 조각난 나무가 연결된 것이 아닌, 온전한 하나의 나무 그대로에서 만들어졌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존 버거는 「하얀 새」라는 글에서 그 전통적 제작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집에서 만들어진 이처럼 단순한 물건들이 우리에게 즐겁고 신비스런 느낌을 주는 까닭을 이야기한다.
“기나긴 겨울 동안 오트사부아 지방에 사는 농부들은 부엌이나 교회에 걸어 놓으려고 나무새를 만들곤 했다. 여행자들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비슷한 새들을 체코슬로바키아나 러시아,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널리 퍼진 전통인 듯싶다. 이 새들을 만드는 원칙은, 정교한 새를 만드는 일이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매우 단순하다. 높이는 일 인치가 약간 못 되고 너비도 그 정도이며, 길이가 육 인치 정도 되는 소나무 가지 두 개를 택한다. 이를 물에 푹 담가 나무가 최대한 유연해지도록 한 후, 거기에 조각을 한다. 한 조각은 부채 모양의 꼬리가 달린 머리와 몸체가 되고, 다른 한 조각은 날개가 된다. 이 기술은 기본적으로 날개와 꼬리 깃털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 양 날개 전체의 나무토막은 깃털의 실루엣을 따라 조각된다. 그러고 나서 부채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씩 열세 개의 엷은 판을 저미고 부드럽게 펼친다. 다른 쪽 날개와 꼬리도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된다. 십자가처럼 이 두 개의 나무조각이 서로 연결되면 새는 완성된다. 접착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두 개의 나무조각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단 하나의 못이 사용될 뿐이다. 그 무게가 이삼 온스(ounce)에 지나지 않을 만큼 아주 가벼운 새는 주로 돌출된 벽난로 선반이나 들보에 달린 실에 걸려 있어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 어떤 이는 새가 된 나무조각을 본다. 어떤 이는 새 이상의 새를 본다. 어떤 이는 신비로운 기술과 일종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그 무엇을 본다.” —「하얀 새」 『시각의 의미』 중에서

방혜자. 수액樹液 2013. 종이에 판화. | 황규태. 메모지. 2005.

방혜자. 수액樹液. 2013. 종이에 판화.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몸이 아파요. 매일 새벽 일어나 기공(氣功)을 하고, 생식과 차로 아침 식사를 한 뒤 화실로 갑니다. 그림을 그리면 나무에 수액이 오르듯 몸과 마음이 충만해져요.” 화가 방혜자(方惠子, 1937- )는 작고 가녀린 몸집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여전히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세번째 작품집 『방혜자: 빛의 노래』(2015)가 출간되고, 한국 전통문화를 유럽에 알리는 일에 협력하면서 열화당과 가까워졌다. 그의 작업에서는 자연과 원소들에 대한 관찰이 통합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데, 이 작품 역시 직접적인 표현 형태라기보다는 원소적인 것이 숭고화된, 초월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황규태. 메모지. 2005.
기발한 상상력과 자유로운 실험 정신을 지닌 포스트모더니즘 사진가 황규태(黃圭泰, 1938- ). 그는 스캐너와 포토샵을 이용해 차용과 복제를 넘나들며, 마치 ‘놀이’하듯 물체의 이미지에 변형을 가해 초현실적으로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이 사진은 평범한 컬러 메모지 단면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것인데, 책과 전시장에서는 이와 매우 흡사한 이미지인 토성의 고리를 확대한 사진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보는 이가 그 시각적 유사성 속에서 우주 공간과 책상 위를 종횡무진하게 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사진문고 『황규태』(2005)와 갤러리로터스에서 열린 「DNA·픽셀」전에 소개되었다.

플로리안 베이겔, 필립 크리스토, 김종규 공동 설계. 열화당 사옥 모형. 2004. | 플로리안 베이겔, 필립 크리스토, 최종훈 공동 설계. 열화당책박물관 단계별 디자인 모형과 설계도. 2009.

플로리안 베이겔, 필립 크리스토, 김종규 공동 설계. 열화당 사옥 모형. 2004.
플로리안 베이겔(Florian Beigel, 1941- )은 파주출판도시 랜드스케이프 디자인을 맡으면서 당시 출판도시 이사장으로 있던 열화당 발행인과 가까워졌고, 이후 그의 파트너 필립 크리스토(Philip Christou), 김종규(金鍾圭)와 함께 열화당 사옥의 설계를 의뢰받게 된다. 열화당 파주 사옥이 완공된 후 건축주에게 선물한 모형으로, 검은 직육면체를 조각칼로 깎아낸 듯한 형태를 지닌다. 즉 건물 가장 바깥 면은 검은색으로 남아 있고, 도려낸 부분은 마치 속살이 드러나듯 투명한 면을 하고 있으며, 깎이고 남은 빈 공간은 투명한 벽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되었다. 양 모퉁이가 크게 잘려 나간 삼사층은 저층부에 올라앉은 파빌리온으로서, 이 양면은 모두 투명하게 된다. “마치 엄청난 크기의 추상문자 조각 하나가 지평선 위에 세워져 있는 듯한 열화당 건물은, 검정색의 단단함 속으로 투명한 부드러움이 걸어 들어오는 느낌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취한 건축적 전략이며, 열화당 건물의 형태적 가치이다.”

플로리안 베이겔, 필립 크리스토, 최종훈 공동 설계. 열화당책박물관 단계별 디자인 모형과 설계도. 2009.
2004년 완공된 기존 사옥과 연결되어 2009년 초 새롭게 증축된 열화당책박물관은, 열화당이 출판도시에서 추구해 온 공동체적 가치와 신념이 반영된 결실이다. 즉 이 건물은 독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주변 건물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출판도시에 문명성(civility)을 부여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다양한 비례의 창문들과 수평·수직의 양각이 적용된 건물 입면은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는 출판도시와 방문객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열화당의 표정으로, 그것이 주는 분위기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서 받는 느낌에 비유될 수 있다. 이 모형과 설계도는 건물이 완공된 후 건축가가 선물한 것으로, 아이디어의 변화를 담은 단계별 형태를 보여 준다. 특히 한지와 같은 종이에 프린트해 실로 직접 꿰매 만든 설계도는, 건축가와 건축주가 나눈 정신적 가치의 아름다운 기록이다.

문봉선. 묵매도墨梅圖. 2010. 광목에 수묵담채. | 월전 장우성. 종이에 수묵.

문봉선. 묵매도墨梅圖. 2010. 광목에 수묵담채.
문봉선(文鳳宣, 1961- )은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는 일련의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온 한국화가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그린 ‘유수(流水)’ ‘대지(大地)’ ‘무(霧)’ 세 연작을 엮은 작품집 『문봉선』(2010)을 출판하고, 작업실을 파주 사옥 한쪽에 마련해 함께 생활하면서 열화당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가는 1991년부터 매화의 아름다움에 빠져 순천 선암사, 구례 화엄사, 강릉 오죽헌, 장성 백양사 등 매화산지를 찾아다니며 이십 년간 연구에 매달려 왔다. 이 작품은 그 노력의 결실로, 기존에 화선지에 먹을 사용하던 것과 달리 천에 채색을 더해 섬세함이 한층 돋보인다.

김혜련. 볼케이노 Volcano. 2008. 캔버스에 유채.

김혜련. 볼케이노Volcano. 2008. 캔버스에 유채.
열화당의 저자이자 화가인 김혜련(金惠蓮, 1964- )은 열화당책박물관의 전신인 ‘도서관+책방’에서 2009년 「책 안의 캔버스」전을 가졌다. 각각이 마치 한 권의 책과도 같은 그의 작품들을 ‘책의 공간’에서 보여 줌으로써, ‘책’으로 맺어진 작가와의 오랜 인연을 아름답게 풀어 보고자 마련했던 전시다. 이 작품은 전시장의 넓은 콘크리트 벽 전체를 꽉 채웠던 백삼십 점의 ‘볼케이노’ 미니어처 연작 중 일부로, 전시가 끝난 후 작가가 캔버스 뒤쪽에 메시지를 적어 신년 카드로 열화당에 선물했다.

[그밖의 전시 작품과 사연 들]

김세중. 축복. 1963. 청동 부조.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 김세중(金世中, 1928-1986)의 작품으로, 그의 아내인 김남조(金南祚, 1927- ) 시인이 열화당을 격려하는 뜻에서 기증했다. 김세중을 기리기 위해 1987년부터 제정된 ‘김세중조각상’은, 열화당이 십 년 넘게 매진한 ‘우현 고유섭 전집’ 출판의 의미를 높이 평가해 2012년도 ‘출판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강운구. 강원도 원성군 소초면 황골. 1974. 『마을 삼부작』 중에서.
열화당에서 출간된 『마을 삼부작』(2001)은 강운구(姜運求, 1941- )가 1972년부터 1980년 사이에 강원도 원성군(원주시) ‘황골’,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내설악),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모은 책이다. 황골은 초가 마을이고, 용대리는 너와집 마을, 수분리는 건새집 마을로, 모두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 책은 잊혀진 전통가옥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소중한 기록으로, 이 사진은 그 중 황골의 한 초가이다.

주명덕. 강릉 선교장. 1980.
한국의 대표적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주명덕(朱明德, 1940- )은 『한국의 장승』(1976) 『정읍 김씨집』(1980) 『강릉 선교장』(1996) 등을 내며 우리 전통문화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열화당과 함께해 왔다. 이 사진은 출판사 이름의 유래가 된 사랑채 열화당(悅話堂)이 위치한 강릉 선교장의 한 건물 벽면을 찍은 것으로, 전통가옥이 지닌 소박함과 조형적 현대성을 동시에 보여 준다. 열화당 사진문고 『주명덕』에는 이번에 전시된 두 작품을 포함해, 1960년대부터 사십 년에 걸친 그의 주요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주명덕. 강릉 선교장. 1980.
선교장(船橋莊)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이 한편에 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으로 세워진 누각 형식의 정자가 활래정(活來亭)이다. 이 사진은 활래정 마루에서 연못 가운데의 노송(老松)을 내다본 풍경으로, 당시 하룻밤을 묵으면서 이곳을 촬영할 수 있었다고 주명덕(朱明德, 1940- )은 회상했다. 벽이 모두 문으로 둘려 있고 방과 누마루 사이에 다실(茶室)이 마련돼 있어 근대 한국 건축의 독특한 구조를 보여 주는 이 건물은, 가족이나 문사(文士)들이 모여 연꽃과 노송을 벗삼아 담소를 나누던 여름철 별당이었다. 사랑채 열화당이 건립된 이듬해인 1816년에 세워진 활래정은 올해로 꼭 이백 년이 되었다.

강우방. 석굴암 본존불. 2002. 『영겁 그리고 찰나』 중에서.
한국미술사학자 강우방(姜友邦, 1941- )은 수상록 『미술과 역사 사이에서』(1999)에서부터 논문집 『원융과 조화』(1990) 『법공과 장엄』(2000)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저서를 열화당에서 출간했다. 그중 『영겁 그리고 찰나』(2002)는 삼십 년 동안 직접 찍은 경주의 능, 탑, 불상 사진들을 모은 사진 수상록으로, 한 미술사학자의 사진을 통한 사물의 해석이 담겨 있다. “사진 찍는다는 것은 탄지(彈指)의 순간에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것, 영원 속에서 찰나를 붙드는 것, 찰나에 사물의 변화를 멈추게 하여 영원히 남기는 것이다.”

김혜련. 완전한 그릇. 2014. 종이에 먹.
한국적 주제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데 몰두하며 화단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가 김혜련(金惠蓮, 1964- ).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작품론을 다듬어 『낭만을 꿈꾼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2002)를 내고, 십 년 후 작품집 『김혜련―분단의 풍경』(2013)을 출간하면서 열화당과 오랜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제기(祭器)를 한지에 그린 정물 소묘로, “어느 날 내 작업실 한구석에 조용히 놓여 있던, 작은 소반 위에 놓인 물 담는 도자기 제기 하나가 내게 우주처럼 다가왔다”는 작가의 심경이 소박하게 전해진다.

김혜련. 정물. 2003. 캔버스에 유채.
열화당이 파주 사옥으로 이사한 2004년, 함께 문을 연 갤러리로터스 두번째 전시로 김혜련(金惠蓮, 1964- )의 「정물이 있는 풍경」을 열었다. 독일 유학 시절부터 작업해 온 작품 중 강렬한 선으로 그린 정물과 정적 구도를 보여 주는 풍경 이십여 점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그때 함께 전시된 것으로, 서양의 영향이 엿보이면서도 윤곽선을 선묘(線描)처럼 다루는 방식에서 동양적인 조형 체계가 함께 조화를 이룬다.

이석우. 석양의 창살. 2014. 캔버스에 유채.
열화당에서 『20세기 미술사』(1986)를 번역 출판했던 이석우(李石佑, 1941- )는 역사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미술을 향한 그리움을 평생 버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원고가 아닌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2011년 열화당책박물관의 전신인 ’도서관+책방’에서 「책 사이에 그림을 걸다」전을 열고, 사 년 뒤 더욱 과감하고 다양한 색채로 「찬란한 미완(未完): 옛것에서 오늘을 찾다」전을 갤러리로터스에서 가졌다. 이 작품은 갤러리로터스에 전시되었던 것으로, 해질녘 창문의 화사한 느낌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표현했다.

이갑철. 제주. 1980년대. 『제주: 천구백팔십』 중에서.
우리 땅의 사람과 자연을 스트레이트 기법으로 담아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표현하는 사진가 이갑철(李甲哲, 1959- ). 사진문고 『이갑철』(2012), 사진집 『제주』(2015)와 『타인의 땅』(2016)을 연이어 내며 열화당과 최근 활발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사진은 1980년대 제주도의 풍경으로, 프레임 밖으로 머리가 잘려 나간 여인의 흩날리는 치마에 섬 바람의 이미지를 빠른 스냅 샷 기법으로 잘 포착하고 있다. “사람들의 삶 속에 바람은 끌고 당기는 힘의 역항을 이루며 제주 섬 어디에나 내재되어 있었다. 그 긴장감이 좋았다. 맞서기도 하고 따라 흐르기도 하면서 바람 속을 거닐었다.”

정재규. 팔대산인八大山人에 대한 오마주Hommage à Badashanren. 2005. 사진과 크라프트 종이.
프랑스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화가 정재규(鄭載圭, 1949- )는 한국의 일세대 북디자이너인 정병규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열화당 발행인이 파리에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보냈을 때 선물 받은 것으로, 그만의 독특한 창작 기법, 즉 사진과 포장지를 동일한 폭으로 잘라 직조하는 올짜기 방식이 사용되었다. 그는 이러한 조형 사진의 목표가 사건과 사물의 재현이나 지시 기능에 국한된 사진의 영역을 해체하고, 새로운 지각 대상으로서의 사진적 체험을 하게 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임옥상. 무제. 2009. 흙 부조.
미술가 임옥상(林玉相, 1950- )은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으로 활동하면서부터 열화당과 늘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든든한 응원군이다. 이 작품은 열화당 사십 주년을 축하하며 선물한 것으로, 인간의 원천, 무한한 포용력을 가진 흙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그의 작업들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가장 태초의 재료인 흙이,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과 같은 근원적 가치를 표현하는 유일한 재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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